[표기와 의미] 도깨비는 뿔이 없다
도깨비를 하나 그려보세요. 뿔이 돋고, 호랑이 가죽을 둘렀고, 가시돋친 쇠몽둥이를 들었습니까.
그건 도깨비가 아닙니다. 일본의 오니(鬼)입니다.
1편에서 우리는 발음이 표기를 바꾸고, 표기가 의미를 지우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더 큰 사건입니다.
번역이 존재를 통째로 바꿔치기한 백 년의 기록.
형상이 없는 정령
우리 문헌과 설화 속 도깨비에게는 정해진 얼굴이 없습니다. 도깨비는 생김새가 아니라 행동으로 존재합니다. 밤길에 씨름을 걸고, 메밀묵을 좋아하고, 하룻밤 사이 다리를 놓고, 심술을 부리다가도 재물을 가져다줍니다. 민속학이 정리하는 도깨비의 본령은 괴물이 아니라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입니다.
¹ 낡은 빗자루, 짚신, 부러진 절굿공이 인간의 손때 묻은 사물이 밤에 깨어난 것이 도깨비라는 유래담부터가, 이 존재가 인간의 삶 바로 옆에 살았다고 말해줍니다.
뿔도, 호피도, 쇠몽둥이도 이 전승 어디에도 없습니다.
증거는 우리말 속에 있습니다. 도깨비장난, 도깨비시장, 도깨비불,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 도깨비가 들어간 말들의 결은 하나같이 엉뚱함이고, 종잡을 수 없음이고, 불쑥 나타났다 사라짐입니다. 말은 그 말을 쓴 사람들의 감정 기록입니다. 우리말은 도깨비를 무서워한 적이 없습니다.
뿔과 호피와 쇠몽둥이의 주인
그 형상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일본의 오니 — 지옥의 옥졸이자 사람을 잡아먹는 괴력의 존재, 마을을 습격하는 재앙. 뿔과 호랑이 가죽에 대해 일본에서 널리 통용되는 설명은 방위입니다.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鬼門)이 축인(丑寅), 곧 소와 호랑이의 방향이라 오니는 소의 뿔을 달고 호랑이 가죽을 두르게 되었다는 것. 손에 든 가시 돋친 쇠몽둥이 가나보(金棒)까지, 우리가 아는 '도깨비'의 표준 도상은 전부 여기서 왔습니다.
몽둥이 하나만 봐도 두 존재의 거리가 나옵니다. 도깨비방망이는 두드리면 금은보화가 나옵니다. 가나보는 때려 부숩니다. 같은 몽둥이인데 한쪽은 생산의 도구고 한쪽은 폭력의 무기입니다.
이 둘이 같은 그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게 이 글의 질문입니다.
오니라는 말의 온도
왜 이 혼동이 단순한 그림 문제가 아닌지, 일본어가 직접 증언합니다. 오니는 일본어 안에서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뿌리 단어입니다. 무서운 아내는 오니요메(鬼嫁), 혹독한 상관은 오니군소(鬼軍曹). 모질게 마음먹는 일은 "마음을 오니로 만든다(心を鬼にする)"고 합니다 자비를 끊는 행위 자체가 오니가 되는 일입니다. 일에 미친 사람은 시고토노 오니(仕事の鬼), 요즘 속어에서 오니(鬼)는 '미치도록' 이라는 최상급 접두어입니다. 해마다 입춘 전날이면 일본의 집집마다 콩을 던지며 외칩니다.
오니와 소토(鬼は外) — 오니는 바깥으로. 모모타로는 오니를 정벌하러 떠나고, 술래잡기의 이름은 오니곳코 (鬼ごっこ)입니다. 술래가 곧 오니. 잡히면 안 되는 존재라는 감각이 국민 놀이의 이름에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나란히 놓아보세요. 한쪽은 콩을 던져 쫓아내는 공포. 한쪽은
밤새 씨름하고 메밀묵을 나누는 이웃.
말의 온도가 이렇게 갈리는 두 존재가 같은 이름, 같은 그림을 쓰게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니에게도 물론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비범한 재능은 귀재(鬼才)라불리고, 인간과 친구가 되고 싶어 우는 빨간 오니의 동화도 있습니다.
경외와 공포가 겹친 존재 — 그것이 오니의 온전한 얼굴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오니가 아닙니다. 오니가 남의 이름으로 살게 된경로입니다.
이식의 경로
이야기의 왕래 자체는 오래된 일입니다. 조선 중기의 강항은 『수은록』에 일본에서 들은 「유계(瘤戒)」 — 혹부리 영감과 꼭 닮은 이야기 — 를 기록해 두었습니다.² 설화는 원래 국경을 넘나듭니다.
그건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도였습니다.
1910년,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물어집』에 「유취(瘤取)」가 소개됩니다. 1915년,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에 「혹잇는老人」이 수록됩니다.³ 총독부가 일본 교과서 『심상소학독본』의 내용을 가져와 실은 것입니다. 왜 하필 이 이야기였나. 한국과 일본은 같은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 — 총독부에게는 그 각본에 맞는 설화가 필요했습니다.⁴
삽화의 이력이 흥미롭습니다. 1915년판에 도깨비의 모습은 없습니다. 혹부리 영감만 그려져 있습니다.⁵ 뿔 달린 오니의 형상이 도깨비의 자리에 들어온 것은 이후의 개정판부터입니다. 이야기가 먼저 들어오고, 형상이 뒤따라 들어오고, 30년의 교과서가 그 그림을 조선의 아이들에게 도깨비라고 가르쳤습니다.
교과서는 한 세대의 눈을 바꿉니다. 해방이 왔을 때 뿔 달린 도깨비는 이미 '우리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정착과 증폭
그 뒤로는 우리가 스스로 그렸습니다. 전래동화 그림책이, 교실 게시판이, 만화가 뿔 달린 도깨비를 재생산했습니다. 2007년 초등 국어 교과서의 도깨비 삽화가 오니 형상이라는 지적으로 수정됐고, 2016년 초등 영어 교과서에서 같은 논란이 반복됐습니다.⁵ 백 년 전 교과서가 심은 그림을 백 년 뒤 교과서가 아직 그리고 있는 겁니다.
일본 대중문화는 그 위에 덧칠을 더했습니다. 1972년의 마징가Z 이름부터 머신(機械)과 마신(魔神)을 겹친 말입니다. 원래 '에네루가Z'였던 이름을 임팩트가 없다고 갈아치운 것인데,⁶ 작품 설정 자체가 "신에게도 악마에게도 될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오니 계보의 양면성이 로봇의 몸을 입은 셈입니다. 반세기 뒤 『귀멸의 칼날(鬼滅の刃)』은 오니를 베는 이야기로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일본의 상상력은 오니를 베어내는 동시에 오니의 힘을 빌립니다. 그 문화가 수입될 때마다 뿔 달린 존재의 이미지는 '도깨비'라는 이름 위에 한 겹씩 쌓였고, 2016년의 드라마 「도깨비」에 이르면 그이름은 원래 주인과 무관한 존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름을 되찾기
도깨비는 뿔이 없습니다. 뿔과 호피와 쇠몽둥이는 오니의 것입니다. 그 형상은 총독부의 교과서를 타고 들어와 백 년 동안 도깨비의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이름을 빼앗긴 존재는 형상을 빼앗기고, 형상을 빼앗긴 존재는 자기 자리를 빼앗깁니다.
다친 것은 도깨비만이 아닙니다. 오래된 문고리와 기와에 새겨진 험상궂은 얼굴 — 우리가 '도깨비 기와'라 불러온 그 얼굴도 이 혼동 속에서 정체를 잃었습니다. 민속학자 김종대의 판정은 단호합니다.
귀면와를 도깨비 기와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며, 귀면와가 수행하는 벽사의 능력을 도깨비는 갖고 있지 않다.¹ 그렇다면 그 얼굴의 진짜 정체는 누구인가.
그 이야기는 벽사 시리즈 3편에서 이어집니다.
발음이 표기를 바꾸면 의미가 지워집니다. 번역이 형상을 바꾸면 존재가 지워집니다. 되찾는 길은 하나, 기록으로 돌아가 원래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이 블로그가 창호의 살 하나, 이름 하나를 계속 기록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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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깨비, 그러나 잘 모르는
- 도깨비에 대한 이해」, 국가유산청 월간 국가유산사랑.
- 강항, 『수은록(睡隱錄)』 「유계(瘤戒)」
- 「혹부리영감설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유경, 「오니(鬼)와 '도깨비'」, 뉴스워치 연재.
- 「또… 한국 도깨비로 둔갑한 '일본 요괴'」, 경향신문 2016.9.13.
- 마징가Z의 명명 경위는 나가이 고의 인터뷰 및 관련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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