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목 스튜디오 베타 오픈 — 자유롭게 사용해 보시고, 버그는 메일로 알려주세요.
블로그

[공간 신분학 1] 조선이 비단 벽지와 이중문을 단속한 이유

이 시리즈 · 공간 신분학

"창호는 신분을 증명하는 언어였다."

  1. 1. [공간 신분학 1] 조선이 비단 벽지와 이중문을 단속한 이유
  2. 2. [공간 신분학 2] 문짝 하나에 담긴 시대의 욕망


요즘은 돈만 있으면 내 취향대로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 게 당연한 세상입니다.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고급 실크 벽지를 바르든, 수입 이중창을 달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죠. 하지만 조선 시대에 그랬다가는 사헌부(지금의 감찰기관)가 들이닥쳐 집을 부수거나 몰수당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당시 핫한 규제 대상이었던 비단 벽지, 비단 창호, 그리고 겹문에 얽힌 조선의 공간 통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1. 사치보다 무서운 죄, '참람'

조선이 집안 인테리어까지 세세하게 규제한 이유는 단순히 "돈을 아껴 쓰라"는 저축 장려 캠페인이 아니었습니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건축을 통해 드러나는 신분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참람'입니다.

참람이란? 자신의 신분을 넘어 분수에 맞지 않게 윗사람의 권위와 형식을 모방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즉, 왕실이나 상류층의 생활양식을 일반인이 따라 하는 것을 사회 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도발로 본 것입니다. 이건 엄포가 아니었습니다. 성종은 사헌부에 "법을 세운 뒤로 제도를 넘어 집을 지은 자는 죄를 묻고, 그 집들을 모두 헐어버리라"고 명하기까지 했습니다.1


2. 단속반의 주요 타깃 리스트

조선의 주택 규제 법령인 '가사제한' 제도는 집의 크기뿐만 아니라 내부 장식과 문짝 모양까지 세세하게 통제했습니다.


① 비단 벽지와 비단 창호 (능라, 사창 등 고급 직물)

일반 가옥은 한지를 바른 소박한 창호를 썼지만, 부유층은 비단이나 망사 형태의 고급 직물인 '사창'이나 왕실용 비단인 '능라'를 벽과 창에 발랐습니다. 이는 일반 한지보다 훨씬 값비싸고 화려하여 집중 단속 대상이었습니다.


② 겹문 및 화려한 문살

창문을 여러 겹으로 설치하는 중첩 구조(이중창)나 계절에 따라 교체하는 복합 창호는 엄청난 경제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문살을 촘촘하고 정교하게 조각한 '장밀문' 역시 많은 재료와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오직 대궐이나 왕족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3. 법으로 정해준 신분별 인테리어 기준

규제의 원형은 세종 13년(1431) 정월, 예조에 내린 하교입니다.2 구조는 두 겹이었습니다.

칸수는 신분 따라 — 대군 60칸, 왕의 친아들·친형제와 공주 50칸, 2품 이상 40칸, 3품 이하 30칸, 서인 10칸.

장식은 왕실 밖 전원 금지 — 주춧돌 외의 다듬은 돌(숙석), 화공(보아지를 새김질한 치장), 진채와 단청. 신분이 높다고 허용량이 늘어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40칸 대감집이라도 단청은 칠할 수 없었습니다. 궁궐 밖에서는 아예 쓸 수 없는, 왕실 전용의 언어였던 겁니다.


신분별 차등이 정교해지는 건 세종 22년(1440) 개정부터입니다.3 이때 차이를 만든 것도 화려함이 아니라 치수였습니다. 대군의 집은 60칸 안에 누각 10칸, 공주와 왕의 형제는 8칸, 2품 이상은 6칸, 서인은 3칸 — 그리고 기둥 높이까지 공주 이상 13척, 관료 12척, 서인 7척으로 층층이 낮아졌습니다. 같은 '집'이라도 신분에 따라 높이 자체가 달랐던 겁니다.


단, 사당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집, 사들인 집은 이 제한을 받지 않았습니다. 조상을 모시는 일과 이미 존재하는 재산까지 법이 부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조선의 창호와 문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집주인의 신분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건축 언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엄격한 규제는 조선 500년 동안 잘 지켜졌을까요? 성종이 "집을 헐어버리라"는 명까지 내려야 했다는 사실이 이미 답의 절반입니다. 2부 「문짝 하나에 담긴 시대의 욕망」에서, 돈의 힘으로 이 신분 방어선을 뚫으려 했던 사람들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이어집니다.


  1. 『성종실록』 55권, 성종 6년 5월 갑술
  2. 『세종실록』 51권, 세종 13년 1월 12일 정축 3번째기사
  3. 『세종실록』 90권, 세종 22년 7월 27일 정묘 2번째기사

평목 스튜디오의 다양한 패턴 디자인 보러가기

컬렉션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