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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신분학 2] 문짝 하나에 담긴 시대의 욕망

이 시리즈 · 공간 신분학

"창호는 신분을 증명하는 언어였다."

  1. 1. [공간 신분학 1] 조선이 비단 벽지와 이중문을 단속한 이유
  2. 2. [공간 신분학 2] 문짝 하나에 담긴 시대의 욕망





1. 시대별로 보는 '주택 규제' 밀당의 역사


조선 전기 (15~16세기) : "법대로 해!" 엄격한 기틀 마련

고려 말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풍조를 지우고 유교 국가의 기틀을 잡던 시기입니다. 세종대왕 시절(1431년)에 이미 사치 규제 초안이 만들어졌고, 성종 대에 이르러 『경국대전』으로 법제화가 완료됩니다. 이때는 실제로 법을 어기고 집을 사치스럽게 지었다가 적발되어 철거된 사례가 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조선 중기 (17세기) : "나라가 어려운데 사치라니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겪은 직후였습니다. 왕실조차 궁궐을 제대로 짓지 못할 만큼 재정이 파탄 났던 시기였기에, 민간에서 비단을 쓰거나 겹문을 다는 행위는 국가적 배신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효종·현종 대 실록에는 몰래 방에 비단을 바르고 대궐의 문 형식을 흉내 내는 세도가들을 엄단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2. 부유한 중인의 등장과 정조의 대단속 (18~19세기)

조선 후기로 가면서 대동법이 실시되고 청나라와의 교역 및 상업이 발달하자, 역사에 흥미로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신분은 낮지만 무역과 상업으로 엄청난 돈을 번 '신흥 부자(중인 역관, 거상)'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들의 속마음을 대사로 옮기면 이랬을 겁니다.


"양반 너희만 좋은 집에 사냐? 나도 돈 많으니 중국산 최고급 비단으로 도배하고, 멋진 겹문 달고 살련다!"

이들은 청나라에서 유입된 고급 직물과 비단으로 실내를 화려하게 꾸미고, 정교한 문살을 넣은 창호를 달아 세를 과시했습니다. 돈의 힘으로 신분 격차를 좁히려는 서민·중인층과 이를 막으려는 조정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시작된 것이죠. 조정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영조는 『속대전(1746년)』으로 단속의 법적 근거를 다시 세웠고, 사치를 극도로 싫어했던 정조는 집안 장식에 비단을 쓰는 자의 재산을 몰수하겠다며 사창(紗窓)을 엄격하게 단속했습니다.


3. 결국 무너진 방어선, 그리고 오늘날의 시선

하지만 19세기 세도정치 시기로 넘어가면서 가사제한령은 사실상 종이호랑이가 됩니다. 신분제가 흔들리고 자본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오면서, 돈만 있으면 신분과 상관없이 대궐 같은 집에 비단 도배를 하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렸고, 주택 규제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인간의 욕망을 물리적인 힘으로만 통제하려는 정치는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더 아름다운 공간에서, 더 안락하게 나를 드러내며 살고 싶다는 인간의 물질적·미적 욕망은 국가가 법령으로 쳐 놓은 엄격한 방어선보다 언제나 한 걸음 더 강했으니 말이죠.


사실 개인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참 좋아합니다. 비록 인간의 세세한 욕망까지 통제하려 했던 '가사제한령' 같은 한계는 있었지만, 당대 문명사적 기준으로 보아도 조선만큼 정교하고 탄탄한 법치 구조와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성문법전인 『경국대전』을 바탕으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단일 왕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온 시스템의 저력은 분명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조선의 주택 규제 역시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공동체의 균형을 깨트리는 과도한 사치를 막고 촘촘한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정교한 시도 중 하나였던 셈입니다.


문짝 하나에 담긴 시대의 욕망

물론 오늘날 전해지는 일부 설명처럼 특정 재료나 창호 형식이 500년 내내 칼같이 금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느슨해지기도 하고, 다시 조여지기도 했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선 시대의 비단 벽지, 사창, 화려한 문살, 겹문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과 인간의 본성이 격돌하던 최전선이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고궁이나 한옥마을에서 전통 창호를 바라볼 때, 그 빛과 바람의 아름다움 너머로 당대의 국가가 지키고자 했던 질서와, 그럼에도 선을 넘고자 했던 인간의 지치지 않는 열망을 함께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창호의 문양 하나, 문짝 하나가 완전히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조선에서는 신분이 문살을 정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자기 문살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이 밀당의 역사가 도착한 결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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