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짭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이 시리즈 · 오늘도 짭니다
"나무로 짜고, 코드로 짜고, 문장으로 짭니다."
- 1. [오늘도 짭니다] 부처님 손바닥
- 2. [오늘도 짭니다] 오늘도 짭니다
- 3. [오늘도 짭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오늘은 물레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도끼로 손가락을 잘라버리고는 대수롭지 않아 하던 조르바의 냉철함을 이야기할까,
로베르 브레송의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모든 것을 다르게 하기 위해"로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브레송으로 정했습니다.
목수 일을 하다 보면 다르게, 새롭게, 멋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합니다.
사실 그게 일에 방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조르바처럼 도끼로 자를 수도 없습니다.
손가락은 잘라도 머리는 자를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브레송입니다.
로베르 브레송은 프랑스 영화감독입니다. 50년 가까이 일하면서 장편 13편을 남겼습니다.
적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해한 방식이 허락하는 속도로만 만든 것입니다.
직업 배우를 쓰지 않았고, 배우라는 말 대신 '모델'이라는 말을 썼고, 같은 동작을 수십 번 반복시켰습니다.
표현하려는 의지가 마모되어 없어질 때까지. 그가 남긴 작업 노트가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1975)인데,
이 책에는 지키지 않은 문장이 한 줄도 없습니다. 이론서가 아니라 실천한 사람의 기록이라서 문장에 힘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 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모든 것을 다르게 하기 위해.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이 말이 있습니다.
창조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물을 변형하거나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사람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그대로의 그것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다.
두 문장은 한 쌍입니다. 앞 문장이 명령이라면 뒤 문장은 그 명령의 근거입니다.
왜 바꾸면 안 되는가.
창조는 재료를 건드리는 일이 아니라 재료들 사이의 관계를 새로 묶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물은 그대로 두고, 배치와 연결만 바꾸는 것.
시인은 단어를 발명하지 않습니다. 다 있는 단어인데 배열이 시를 만듭니다.
창조에 대한 통념은 대체로 이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창조하려면 새로워야 하고, 새로우려면 옛것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다들 옛것 중에 무엇을 버릴지를 고민합니다.
브레송을 통과시키면 화살표가 뒤집힙니다. 버려야 할 것은 옛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려는 나의 의지입니다.
그것을 버리면 새로움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창조입니다.
조르바의 도공은 손가락을 버렸습니다. 브레송은 배우의 표현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둘이 버린 것은 종류가 다릅니다.
손가락은 작업을 막는 장애물입니다. 치우면 물레가 돌아갑니다.
그래서 도끼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표현은 작업을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돌아가게 합니다, 겉으로는.
문제는 진짜의 자리를 가짜가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장애물이 아니라 대체물입니다.
그래서 도끼로는 안 되고, 반복으로 마모시켜야 했습니다.
한 번 잘라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시 자라니까요.
목수의 다르게 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쪽인가. 브레송 쪽입니다.
그 마음은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그르치게 합니다.
머리를 자를 수 없다고 한 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단이었습니다.
자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잘라서 해결되는 종류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목수는 매일 아침 그 마음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버린 자리에서 가장 다른 것이 나옵니다.
창호는 수백 년째 같은 방식으로 짭니다.
살 짜는 법이 같고, 비례가 같고, 결구가 같습니다.
바꾸지 않는 것이 규칙입니다.
그런데 같은 창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가 다르고, 손이 다르고, 그날이 다릅니다.
형식을 고정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보입니다. 형식을 계속 바꾸면 차이는 소음에 묻힙니다.
살 하나하나는 발명품이 아닙니다. 수백 년 된 부재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살과 살이 만나는 관계에서 간격에서, 비례에서, 교차에서 문양이 생깁니다.
같은 부재로 정자살도 되고 숫대살도 됩니다. 창조는 부재에 있지 않고 짜임에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다릅니다.
브레송의 문장은 작업대 위에서는 이론이 아니라 목격담입니다.
내일도 같은 비례로, 같은 짜임으로 짭니다.
다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침에 버리고 시작합니다.
그래야 다른 것이 나오니까요.
참고: 로베르 브레송,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Notes sur le cinématographe, 1975). 도공 일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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