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辟邪) 1] 귀신을 발명한 뇌
이 시리즈 · 벽사(辟邪)
"벽사는 경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귀신을 발명한 뇌 — 인간은 왜 이유 없는 불행을 견디지 못하는가
수만 년 전 인류에게 문밖은 알 수 없는 것들의 영역이었습니다. 예고 없이 내리치는 번개, 몇 달째 이어지는 가뭄, 어제까지 함께 사냥하던 동료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앓다 죽어가는 역병. 과학도 의학도 없던 시절, 인간은 이 혼돈 앞에서 무력했습니다.
뇌는 이 공포에 대응하는 전략을 만들어냅니다. 심리학자 아리 크루글란스키가 '인지적 종결 욕구'라 이름 붙인 성향 —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인간의 뇌는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지 않는 상태, 아무 이유 없이 불행이 닥치는 상태를 가장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없을 때의 무력감은 정신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뇌는 가상의 인과관계를 만들어냅니다. 나무와 바위와 바람에 우리와 같은 영혼과 의도가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의 본질입니다.
- 이유가 없는 상태: "아이가 왜 갑자기 열이 나고 죽어가는가?" → 대책도 예측도 없다. 집단 전체가 마비된다.
- 이유를 만든 상태: "악귀가 아이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 → 원인이 규명되는 순간, 공포는 대응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온다.
불행에 '귀신'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인간은 무력감에서 벗어납니다. 원인이 악귀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생깁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문 앞에 팥을 뿌리고, 짐승의 피를 바르는 것. 존재하지 않는 귀신을 발명해서라도 세상에 이유를 부여하고, 그 이유로 통제감을 얻으려 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에 물리적인 이유를 대고, 그것을 막아 삶을 지키려 한 이 오래된 대응을 벽사(辟邪)라고 부릅니다.
벽사는 미신이 아니라 인지 전략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혼돈으로부터 정신을 지키기 위한 최초의 방패.
그리고 인류는 이 방어를 물리적으로 고정하기 위해 동굴 입구에 나무판자를 대고 안과 밖을 나누는 선을 그었습니다. 문(門)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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