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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辟邪) 3] 요괴, 도깨비, 그리고 치우천황

이 시리즈 · 벽사(辟邪)

"벽사는 경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1. 1. [벽사(辟邪) 1] 귀신을 발명한 뇌
  2. 2. [벽사(辟邪) 2] 위태로운 선(線) — 문짝, 안전과 공포가 교차하는 경계
  3. 3. [벽사(辟邪) 3] 요괴, 도깨비, 그리고 치우천황
  4. 4. [벽사(辟邪) 4] 사방에 깔린 결계, 그리고 현대의 벽사

문이라는 좁은 통로가 설정되었으니, 이제 그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 바깥의 혼돈을 막아설 가장 강력한 파수꾼을 앉힐 차례였습니다.

오래된 한옥의 문고리와 궁판, 기와 끝자락에 새겨진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 우리는 흔히 '도깨비'라고 부릅니다. 박물관에서도 오랫동안 '도깨비 기와'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 왔지요. 그런데 이 호칭에는 계보가 있습니다. 뿔이 돋고 쇠몽둥이를 든, 우리에게 익숙한 '도깨비'의 모습은 사실 일본의 오니(鬼)의 도상입니다. 일제강점기의 교과서와 번역을 거치며 오니의 형상이 도깨비라는 이름을 차지했고, 그 자리에 원래 있던 얼굴은 이름을 잃었습니다. 그 백 년짜리 혼동은 따로 한 편으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름을 잃은 그 얼굴의 정체를 묻겠습니다.


정체를 물으려면 개념부터 갈라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도깨비는 경계의 파수꾼이 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정령 —엘프, 페어리, 픽시 — 이 깊은 숲속이나 아예 다른 영적 세계에 머물며 인간과 거리를 두는 것과 달리, 도깨비는 인간의 손때가 묻은 빗자루, 짚신, 부러진 절굿공이 같은 낡은 생활 사물이 밤에 깨어난 존재입니다. 밤새 씨름을 하자고 조르고, 메밀묵을 좋아하고, 심술을 부리다가도 재물을 가져다주는 친근한 마을의 터줏대감이지, 한자리를 지키며 경계를 수호하는 묵직한 존재가 아닙니다.


요괴(妖怪)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의 기이한 정기나 억울한 동물·사물이 변해 나타난 괴물일 뿐이니까요. 문밖에서 밤마다 밀려오던 진짜 공포는 이런 장난꾸러기들이 아니라 마귀(魔鬼) — 인간을 타락과 파멸로 이끄는 악 그 자체, 온 가족을 몰살하고 마을 하나를 통째로 지우는 역병과 재앙의 기운이었습니다. 장난기 어린 정령의 힘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목숨이 걸린 최전선의 방어벽에, 인간은 만만한 존재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경계에 새겨진 이 얼굴은 누구인가. 먼저 학계의 논의를 정직하게 놓고 가겠습니다. 미술사에서는 이 얼굴을 귀면(鬼面)이라 부르며, 그 도상의 뿌리를 중국 고대 청동기의 도철(饕餮) 문양 계보에서 찾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부릅뜬 눈과 드러낸 이빨의 정면상은 동아시아 전역의 기와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형식이니, 도상의 족보만 따지면 이 얼굴은 밖에서 들어온 형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블로그는 이 얼굴을 치우(蚩尤)로 읽습니다. 치우는 어디의 누구인가. 가장 오래된 기록인 사마천의 『사기』에서 치우는 지금의 중국 허베이 탁록(涿鹿) 벌판에서 황제(黃帝)와 천하를 놓고 싸운 고대의 전신(戰神)으로 등장합니다. 중원의 역사가가 자기 시조의 최대 적수로 기록할 만큼 강했던 존재라는 뜻입니다. 신화는 그를 이렇게 전합니다 — 머리는 구리요 이마는 철이며(銅頭鐵額), 수많은 전쟁을 패배 없이 이끌고 바람과 비를 부렸다고. 그리고 후대의 문헌들은 그를 중원의 동쪽, 동이(東夷) 계열의 존재로 읽어 왔습니다.


우리 쪽 기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환단고기』는 치우를 배달국의 14대 천왕 자오지(慈烏支) 환웅으로 기록합니다 — 백두산 신시(神市)에서 열린 나라가 그의 대에 서쪽 청구(靑丘)로 나아가 탁록에서 황제와 맞섰다는 것입니다. 이 문헌에는 진위 논쟁이 있고, 이 블로그는 논쟁 중인 문헌을 사실의 전거로 삼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탁록의 전신을 남의 신화 속 괴수가 아니라 우리 계보의 천왕으로 기록하려는 전승이 그만큼 강력하게 이어져 왔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전승은 종이 위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땅은 치우를 자기 계보의 군신(軍神)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이것은 막연한 전승이 아니라 국가의 공식 기록입니다. 조선의 전례 규정은 군기(纛)를 "치우의 머리와 비슷하며, 군대가 출발할 때 제사 지낸다"고 명시했고, 세종 대에는 이 둑제(纛祭)를 국가 제사의 하나로 편입해 봄가을로 지냈으며, 이순신도 출진에 앞서 둑제를 지냈다고 『난중일기』에 적었습니다.⁶ 그 제사터의 기억은 오늘의 뚝섬이라는 지명에 남았습니다. 왕조가 무력의 신으로 제사한 얼굴 — 그것이 치우입니다. 그러므로 이 블로그의 독법은 이렇습니다.


도상의 족보가 어디서 왔든, 경계의 파수꾼 자리가 요구하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자격입니다. 마귀를 막는 일은 자비로운 신의 소관이 아니라 그보다 강한 무력의 소관이고, 이 땅에서 그 자격으로 국가가 제사까지 지낸 존재는 치우뿐입니다. 얼굴의 형식이 무엇을 닮았든, 사람들이 그 얼굴에 채워 넣은 것은 전쟁의 신의 힘이었습니다.


인간이 문짝이라는 경계 위에 자비로운 신이 아닌 가장 흉포한 전쟁의 신의 면상을 박아넣은 이유는 이제 명확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가장 무자비한 바깥의 혼돈을 제압하기 위해 그보다 강한 무력으로 맞불을 놓는 벽사의 전략이었습니다. 문고리에 새겨진 그 두 눈은 바깥을 사납게 노려봅니다. 전쟁의 신이 이곳을 가로막고 있으니, 어떤 사악한 기운도 이 선을 넘는 순간 온전하지 못하리라는 경고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형상입니다. 이 압도적인 파수꾼이 문 앞에서 혼돈을 격퇴해 주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인간은 비로소 무거운 나무 문을 닫고 들어와 발을 뻗고 잠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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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2. 동두철액과 풍우 조화의 묘사는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인용된 『용어하도(龍魚河圖)』
  3. 『환단고기』 「삼성기」·「신시본기」의 치우 관련 기술. 이 문헌의 진위에 관한 논쟁은 본문에 밝힌 바와 같으며, 여기서는 사실의 전거가 아니라 전승의 기록으로 인용한다.
  4. 『세종실록』 133권, 오례 군례 서례 병기 '둑(纛)'
  5.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 7월 19일
  6. 『난중일기』 계사년(1593) 2월 4일 외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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