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辟邪) 4] 사방에 깔린 결계, 그리고 현대의 벽사
이 시리즈 · 벽사(辟邪)
"벽사는 경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 1. [벽사(辟邪) 1] 귀신을 발명한 뇌
- 2. [벽사(辟邪) 2] 위태로운 선(線) — 문짝, 안전과 공포가 교차하는 경계
- 3. [벽사(辟邪) 3] 요괴, 도깨비, 그리고 치우천황
- 4. [벽사(辟邪) 4] 사방에 깔린 결계, 그리고 현대의 벽사

인간의 불안은 대문이라는 단 하나의 선 위에만 머물 만큼 일차원적이지 않습니다. 불행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틈새를 노리고, 내가 가장 안심하고 방심한 취약한 순간을 틈타 들이닥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대문이라는 1차 방어선을 넘어, 삶의 반경 ‘여기저기’에,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길목'에까지 촘촘하고 정교한 벽사의 그물망을 이중 삼중으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의 집을 넘어서면, 마을의 경계인 고갯마루나 동네 어귀마다 '성황당'을 세웠습니다. 알 수 없는 외부의 역병이나 서늘한 잡귀가 우리 마을이라는 안전한 공동체의 영토 안으로 아예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경계선마다 알박기하듯 세워둔 거대한 '정신적 검문소'였습니다. 오가는 이들이 던진 돌멩이 하나하나는 그대로 거대한 결계의 벽이 되었습니다.
국가와 도성의 경계로 스케일을 키우면 광화문 앞의 '해태'가 버티고 섰습니다. 해태는 단순히 화재를 막는 상징을 넘어, 온갖 사악한 기운과 인간 가슴속의 선악, 시시비비를 귀신같이 가려내어 들이받아 버리는, 왕의 영토를 지키는 가장 영험한 최고 존엄의 벽사 신수였습니다.
이 거대한 방어선들은 다시 집안 구석구석 가장 세밀하고 연약한 곳까지 핏줄처럼 이어졌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가장 취약하고도 신성한 순간에는 대문에 붉은 고추와 숯을 꿴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과 미생물의 접근을 물리적·정신적으로 원천 봉쇄했습니다. 집의 가장 높은 곳인 지붕 꼭대기 틈새에는 처마 밑 막새기와에 치우천황의 귀면을 새겨, 하늘에서 떨어지는 액운을 사방에서 격퇴했습니다.
심지어 인간은 흐르는 시간의 길목에도 벽사를 설치했습니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의 기운이 극에 달하고 귀신의 힘이 가장 강해진다는 '동짓날'이 오면, 옛사람들은 이를 묵은 해의 어둠이 끝나고 태양의 빛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새해의 진정한 시작(작은설)'으로 보았습니다.
이때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벽과 장독대, 대문 옆 등 집안 여기저기에 뿌렸던 것은, 새해라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의 영토로 이주하기 전, 단 한 톨의 묵은 액운과 악귀도 함께 넘어오지 못하도록 치던 거대한 '시간의 방어벽'이었습니다. 새해의 첫 단추를 이 붉은 방어선으로 채워 넣어야만 인간은 다가올 일 년을 안심하고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고도로 첨단화될수록 인간이 마주하는 불안과 불확실성은 더 정교하고 날카로워집니다. 차가운 과학이 현대인의 이 파편화된 새로운 불안에 '명확하고 즉각적인 이유'를 대주지 못할 때, 인류의 뇌는 내 마음의 안녕을 지켜줄 새로운 구원과 나만의 교리를 기어이 끊임없이 발명해 냅니다. 인간의 가슴속 불안이 멈추지 않는 한, 새로운 형태의 벽사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생존 본능인 셈입니다.
그리고 과학의 정점을 달린다는 지금 이 순간, 이 수만 년 된 거대한 벽사의 담론은 우리의 손가락 끝,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소름 돋도록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고갯마루에 세우던 성황당과 문앞에 걸던 촘촘한 금줄은, 내 멘탈을 흔드는 불쾌한 자극과 타인을 내 세계에서 원천 배제해 버리는 스마트폰의 SNS 차단과 계정 비공개라는 디지털 결계가 되었고, 새해의 경계를 지키던 동지 팥죽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어떻게든 규명하려던 본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불안감을 유발하는 타인의 이마에 16가지 프레임의 라벨을 턱 하니 붙여 뇌를 안심시키는 현대인만의 부적, MBTI 신앙이 되었을 뿐입니다.
결국 수만 년 전 숲속에서 샤먼의 불꽃을 보며 안도하던 원시인의 뇌와, 지금 방구석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우리의 뇌는 정확히 같은 주파수로 진동하고 있습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삶의 반경 여기저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부적을 붙이고, 칼날 같은 선을 긋고, 차단 버튼을 누르는 이유. 그것은 알 수 없는 공포와 소음으로 가득 찬 이 거대한 카오스 속에서, 어떻게든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의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을 부서지지 않게 지켜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가장 눈물겹고도 아름다운 생존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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