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창호 3] 쿠미코(組子)에 대한 오해
이 시리즈 · 한·일 창호
"한국과 일본의 창호는 우열이 아니라 방향이 다르다."
앞선 장에서 우리는 일본 쇼지의 선명한 단정함이 종이를 바른 위치와 기후가 만든 그림자의 효과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문살을 이야기할 때 대중이 빠지는 흔한 함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쿠미코(組子)'를 한국의 창살 문양과 나란히 놓고 "일본 창살이 훨씬 정교하다"고 결론 내리는 비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비교는 대상 설정부터 틀렸습니다. 한국 창호와 비교해야 할 것은 쿠미코가 아니라 쇼지(障子)입니다.
대중은 쿠미코를 일본식 창살 문양의 이름처럼 혼용하지만, 쿠미코는 창호의 명칭이 아닙니다. 못을 쓰지 않고 나무에 홈을 파서 기하학 문양을 짜 맞추는 목공예 기법의 이름입니다. 쇼지에 쓰이기도 하지만 가구와 장식품 등 목공 전반에 걸친 특수 기술 영역이고, 일본의 일상 주택에서 실제로 쓰인 격자 종이 창호는 쇼지입니다. 일상의 창호 문화를 비교하려면 기법이 아니라 창호끼리 비교해야 합니다. 특수 공예품인 쿠미코와 한국의 일반 창살을 나란히 놓는 것은 체급이 맞지 않는 비교입니다.
체급을 맞추고 보면, 두 나라의 창호가 서로 다른 문제를 풀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한국의 창호는 외벽에서 비바람과 직접 만나는 부재였습니다. 그래서 살짜임 자체에 역학과 서사가 함께 들어갑니다.
- 어금육모살: 창살의 선들이 어긋나며 육각형을 이루는 짜임입니다. 수평·수직의 단순 교차를 넘어 사선까지 세 방향에서 밀려오는 힘을 분산시켜, 나무의 홈과 짜임만으로 뒤틀림에 강한 구조를 만듭니다.
- 교살: 살을 45도로 촘촘히 교차시켜 마름모꼴 그물망을 엮는 기법입니다. 사선 구조는 시각적으로 화려할 뿐 아니라, 문짝에 가해지는 변형 압력을 사방으로 흩어내는 공학적 안정성을 가집니다.
- 아(亞)자살과 만(卍)자살: 이어지는 선의 꺾임으로 번영과 장수의 염원을 새긴, 문살로 쓴 문자입니다.
- 거북살: 장수와 방어를 상징하는 거북 등껍질의 기하학으로 문밖의 나쁜 기운을 막고자 한 벽사의 짜임입니다.
한국의 장인들은 나무가 사계절 기후 속에서 숨을 쉬며 자리 잡을 '뒤틀림의 여백'을 품으면서, 안쪽에는 어금육모나 교살 같은 구조 공학을 심어두었습니다. 외유내강의 설계입니다.
일본의 쇼지는 다른 조건에서 출발합니다. 일본은 고온다습한 기후로 목재의 수축과 팽창이 극심한 환경입니다. 얇은 살로 짠 정밀 격자는 습도 변화 앞에서 쉽게 뒤틀리기 때문에, 쇼지는 처마와 아마도(雨戸)가 비바람과 습기를 한 번 걸러준 안쪽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실내 건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구조 저항의 부담에서 벗어난 쇼지는 다다미 모듈에 맞춘 규격 건구로 표준화되었고, 그 정연한 격자와 와시(和紙)를 통과한 확산광이 만드는 그림자가 훗날 일본 건축 미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음예예찬(陰翳礼讃)』에서 일본의 아름다움을 빛이 아닌 그늘에서 찾은 것도 이 맥락 위에 있습니다. 변주 역시 요코시게처럼 격자의 비례로 빛을 다루거나, 유키미쇼지처럼 앉은 시선의 높이에서 정원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빛과 공간을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특수 공예 기법인 쿠미코를 끌고 와 일본 창살의 우월함을 말하는 것은 특수 공예와 일상 창호를 혼동한 오해입니다. 그리고 체급을 맞춘 비교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열이 아니라 방향의 차이입니다. 쇼지는 습기를 격리한 자리에서 빛과 공간의 연출이라는 문제를 파고들어 규격의 미학에 도달했고, 한국의 창호는 자연과 직접 맞서는 자리에서 구조 공학과 벽사·길상의 서사를 살짜임 하나에 겹쳐 넣었습니다.
한국 창호의 정교함은 표면의 화려함이 아니라 짜임의 안쪽에 있습니다. 잘못된 비교 대상 앞에서는, 그 정교함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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