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창호 5] 한·일 공간을 다루는 방식
이 시리즈 · 한·일 창호
"한국과 일본의 창호는 우열이 아니라 방향이 다르다."

지금까지 우리는 종이를 바른 위치와 그림자, 문살의 역학과 비례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창호가 각자의 기후와 생활 방식에 순응하며 발전해 온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습니다. 방 안의 인간이 바깥의 자연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이 차이는 문을 여는 동작 하나에서 갈라집니다. 한국의 들어열개와 일본의 미세기입니다.
한국: 경계를 들어 올리는 방식
한국 건축에는 문을 옆으로 미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짝 전체를 위로 들어 올려 천장에 걸어두는 들어열개가 있습니다. 문을 들어 올리는 순간 방을 가로막던 외벽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방은 마루가 되고, 마루는 마당이 되고, 앞산의 풍경이 방 안까지 들어옵니다.
이 개방을 가능하게 하는 부재가 천장에 매달린 들쇠입니다. 문을 닫아두었을 때는 존재감 없이 매달려 있다가, 무거운 문짝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것을 받아 거는 고리가 됩니다. 벽이었던 것이 몇 초 만에 없는 것이 되는, 경계 자체를 접었다 폈다 하는 장치입니다.
일본: 경계 안에 프레임을 내는 방식
일본의 미세기는 바닥과 천장의 홈을 따라 좌우로만 움직이며, 문을 해체하거나 들어 올리지 않습니다. 구조적으로 열린 면만큼 닫힌 면이 남습니다. 대신 이 방식은 개구부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해줍니다. 문을 어느 만큼 여느냐에 따라 바깥 정원의 어느 부분을 방 안에 들일지가 정해집니다.
이 조형의 정점이 유키미쇼지(雪見障子)입니다. 문 전체가 아니라 하단의 작은 창만 밀어 올려, 방에 앉은 사람의 눈높이에 정원과 내리는 눈을 걸어두는 장치입니다. 앞선 장에서 보았듯 쇼지는 실내를 구획하는 건구였기에, 자연을 통째로 들이는 대신 앉은 시선의 높이에서 풍경을 편집해 들이는 방향으로 정교해졌습니다.
같은 차경, 두 개의 해법
바깥의 풍경을 빌려와 내 공간의 일부로 삼는 차경(借景)은 한·일이 공유한 동아시아의 오래된 개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 정반대였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벽을 들어 올려 없앰으로써 풍경 전체를 들였고, 일본은 프레임을 만들어 풍경의 한 조각을 들였습니다. 하나는 경계를 지우는 차경이고, 하나는 경계로 편집하는 차경입니다.
이 차이 역시 취향이 아니라 조건에서 옵니다. 한국의 창호는 마당과 직접 만나는 외벽이었으니 그 벽을 들어내면 곧 자연이었고, 일본의 쇼지는 아마도와 복도 안쪽의 칸막이였으니 걸러진 자연을 정밀하게 배분하는 쪽으로 발달했습니다.
경계 위에서 갈라진 두 개의 답
이것으로 [한·일 창호] 시리즈를 마칩니다.
대중은 오랫동안 쇼지의 단정함에 매료되어 왔고, 선이 굵은 한국의 창호를 투박함으로 오해해 왔습니다. 다섯 편에 걸쳐 확인한 것은 그 인상의 이면입니다. 쇼지의 선명함은 종이 바깥의 살과 지워진 그림자에서, 규격의 질서는 습기를 격리한 실내라는 조건에서 왔습니다. 쇼지의 규격과 그림자가 1편에서 본 와비사비 — 소멸을 받아들이는 태도 — 의 물질화라면, 한국의 창호는 자연과 직접 맞서는 자리에서 어금육모와 머름 같은 구조 공학을 살짜임 안에 숨기고, 종이 위로 번지는 그림자와 벽사·길상의 염원까지 서사로 품은 결과였습니다.
한쪽은 걸러진 자연을 정밀하게 편집했고, 한쪽은 벽을 들어 올려 자연 속에 방을 놓았습니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문이 서 있던 자리가 낳은 두 개의 답입니다.
그리고 그 답의 정교함은 — 이 시리즈가 반복해서 확인했듯 — 표면이 아니라 짜임의 안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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