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창호 4] 문살의 여유로운 비례 vs 선과 면의 엄격한 분할
이 시리즈 · 한·일 창호
"한국과 일본의 창호는 우열이 아니라 방향이 다르다."
- 1. [한·일 창호 1] 일본의 문을 열기 전, 우리가 '와비사비'를 먼저 말해야 하는 이유
- 2. [한·일 창호 2] 한일 창호의 구조적 반전과 기후 환경
- 3. [한·일 창호 3] 쿠미코(組子)에 대한 오해
- 4. [한·일 창호 4] 문살의 여유로운 비례 vs 선과 면의 엄격한 분할
- 5. [한·일 창호 5] 한·일 공간을 다루는 방식

앞선 장에서 우리는 한국 창호의 구조적 역학(어금육모, 교살)과 그 안에 깃든 상징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이 기술적 토대 위에서 양국이 도달한 시각적 조형, 즉 비례와 면 분할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대중은 쇼지의 자로 잰 듯 균등한 격자에서 단정하고 현대적인 미감을 발견합니다. 그 균등함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한국의 창호는 왜 다른 길을 갔는지가 이 글의 질문입니다.
한국의 창호는 문틀 안에 창살을 균일하게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짝 안에서 상단과 하단을 다르게 분할했습니다.
- 머름과 궁창이 주는 안늑함과 보호력: 한국의 문 아래쪽에는 나무판으로 두껍게 막은 궁창(문판)이나 문틀 아래를 받치는 머름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구조이자 치수입니다. 한국의 창호는 마당과 방을 곧바로 연결하는 외벽이었습니다. 방바닥에 눕는 좌식 생활에서 문 전체가 얇은 살과 종이뿐이라면 바깥의 시선과 외부 충격에 신체가 그대로 노출됩니다. 장인들은 사람이 눕고 앉는 높이를 기준으로 하단을 두터운 나무판으로 막고, 상단으로 빛과 바람을 받았습니다. 머름의 높이는 방에 앉아 팔을 걸쳤을 때 편안한 치수이기도 합니다. 면 분할의 기준선이 곧 사람의 몸인 것입니다.
- 시선이 숨을 쉬는 여백: 한국의 문살은 가운데를 비우고 위아래만 촘촘히 엮는 등, 공간의 용도에 따라 살의 간격에 변주를 주었습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 차이가 시선이 머무는 운율을 만듭니다.
일본의 쇼지에도 하단에 나무판을 댄 형식이 있습니다. 코시츠키쇼지(腰付障子)의 코시이타(腰板)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판의 일차적 역할은 청소와 생활 동선에서 종이가 찢기는 것을 막는 보호부이며, 높이 역시 다다미 모듈과 건구 규격 안에서 정해집니다. 앞선 장에서 보았듯 쇼지는 아마도와 복도가 외부를 걸러준 안쪽의 이동식 칸막이였기에, 외부 충격으로부터 신체를 막는 방벽일 필요가 없었고, 대량 생산과 교체가 가능한 균등 분할로 표준화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의 하단 판은 닮았지만 이유가 다릅니다. 쇼지의 코시이타가 규격 안의 보호부라면, 한국의 머름과 궁창은 눕고 앉는 몸의 높이에서 출발한 구조 부재입니다. 격자의 균등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쇼지의 등분은 모듈과 교체의 질서에서 나온 규격의 비례이고, 한국 창호의 변주는 신체와 시선에서 출발한 몸의 비례입니다.
일본은 표준화된 질서로 정돈된 일관성을 얻었고, 한국은 외부와 맞서는 경계 위에서 선과 판을 밀고 당겨 몸을 보호하고 시선을 쉬게 하는 조형을 얻었습니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의 실패가 아닙니다. 다만 문이 서 있던 자리가 달랐을 뿐입니다.
이 살의 이야기, 직접 만들어보세요
글에서 다룬 육모 솟을살(Hexagon Lattice) 패턴을 스튜디오에서 바로 조작해볼 수 있습니다.
육모 솟을살(Hexagon Lattice) 스튜디오 열기평목 스튜디오의 다양한 패턴 디자인 보러가기
컬렉션 보러가기